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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디자인의 진자 — 왜 지금 다시 그리드로 돌아왔는가

Flash에서 시맨틱 웹, Three.js에서 에디토리얼까지 — 웹 디자인은 10년 주기로 반복된다. AI 시대가 다시 '구조'로 돌아간 이유를 한 번에 정리한다.

관점 · p1 · 2026.05.08 · 스튜디오파티클 · 14분 읽기

들어가며 — 웹은 왜 이렇게 자꾸 바뀌는가

웹사이트 리뉴얼을 여러 번 해보신 분이라면 느끼셨을 것이다. 5년 전 만든 사이트를 지금 보면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지금 만든 사이트도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웹 디자인이 정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고 있어서일까.

아니다. 웹 디자인의 역사를 좀 떨어져서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분명히 보인다. 10년 주기로 한 방향으로 극단을 밀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온다. 마치 시계추처럼. 이 진자 운동은 우연이 아니라 기술·비즈니스·사용자 피로도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현상이다.

그리고 2026년 지금, 진자는 “구조와 읽힘” 쪽으로 크게 돌아와 있다. 이 회귀가 왜 일어났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이 흐름이 왜 당신의 웹사이트 전략과 직접 연결되는지 — 한 번에 정리한다.

1. 20년간의 진자 — 한눈에 보는 웹 디자인 역사

이야기를 풀기 전에, 지난 20년의 흐름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 시기 | 유행한 기술 | 시각적 특징 | 왜 끝났나 | |——|———–|———–|———| | 1995–2004 | Flash | 인트로 애니메이션, 3D, 사운드 | iPhone 등장 (Flash 지원 안 함) | | 2005–2011 | 시맨틱 웹, Web 2.0 | 깔끔한 마크업, RSS, 블로그 | 모바일·반응형 요구 | | 2012–2016 | Bootstrap, Flat UI | 12-컬럼 그리드, 미니멀, 모바일 퍼스트 | “너무 똑같아 보인다” 비판 | | 2017–2022 | WebGL, GSAP, Three.js | 3D, 스크롤 애니메이션, 글래스모피즘 | 퍼포먼스·검색·피로감 | | 2023–현재 | 에디토리얼, Swiss 그리드 | 정적 구조, 강한 타이포그래피, 읽힘 중심 | ??? (다음은 언제) |

이 표를 보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화려한 시기”와 “읽기 쉬운 시기”가 번갈아 온다.

  • Flash(화려) → 시맨틱 웹(읽힘)
  • Bootstrap(읽힘) → Three.js(화려)
  • 지금 에디토리얼(읽힘) → 언젠가 또 화려한 것이 올 것

왜 이렇게 왕복하는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2. 진자가 움직이는 세 가지 힘

힘 1. 새 기술이 나오면 극한까지 밀어본다

사람은 새 장난감을 받으면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 한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 2000년 Flash가 나오자 → 모든 사이트에 인트로 애니메이션이 생겼다. [Skip Intro] 버튼이 표준이었다
  • 2013년 CSS3 transform이 나오자 → 모든 버튼이 3D flip을 했다
  • 2017년 WebGL이 성숙하자 → 모든 히어로에 3D 오브젝트가 떠다녔다
  • 2023년 AI 이미지가 나오자 → 모든 사이트에 그라데이션 Blob이 생겼다

그리고 2~3년이 지나면 “다 똑같아 보인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 차별화 도구였던 것이 동질화 도구가 되는 순간이다.

힘 2. 비즈니스 현실이 억제한다

화려한 사이트는 만들기 비싸고, 유지보수 어렵고, 느리다. 결국 돈을 내는 비즈니스 오너가 묻는다.

  • “근데 우리 매출이랑 무슨 상관이야?”
  • “모바일에서 왜 이렇게 느려?”
  • “구글에서 왜 우리 회사가 안 잡혀?”
  • “이거 운영하려면 개발자 계속 붙어 있어야 해?”

이 질문들이 쌓이면, 시장은 “읽히는 사이트·운영되는 사이트” 쪽으로 다시 끌려간다. 돈이 되는 방향으로.

힘 3. 사용자 피로감이 쌓인다

신기하다 → 익숙해진다 → 질린다 → 반대가 신기해진다.

2020~2022년에 Three.js 사이트들이 처음 나왔을 땐 누구나 “와 멋지다” 했다. 2024년쯤 되니 “또 이거야?”가 됐다. 5년 피로감이 쌓인 것이다.

그리고 이 피로감이 사용자 → 디자이너 → 클라이언트 순으로 퍼진다. 누군가 “우리는 오히려 깔끔하게 가자”를 외치면, 그게 다음 유행의 씨앗이 된다.

3. 2020–2022, Three.js 시대가 남긴 것

진자의 “화려한 극단”이 가장 가까이 있었던 건 코로나 시기였다.

왜 하필 그때?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브랜드 체험이 불가능해졌다. 매장·전시·행사가 모두 막혔다. 브랜드들은 “웹사이트가 유일한 만남의 장소”가 됐고, 여기서 승부를 봐야 했다. 에이전시들은 경쟁적으로 화려함을 밀어붙였다.

  • GSAP ScrollTrigger — 스크롤할 때마다 텍스트·이미지가 움직이는 연출
  • Locomotive Scroll — 스크롤 속도·관성을 조작하는 기법
  • Three.js — 브라우저에서 3D 오브젝트·파티클을 띄우는 라이브러리
  • Glassmorphism — 반투명 유리 같은 UI

Awwwards(웹 디자인 수상 사이트)의 2021~2022년 수상작을 지금 다시 보면 거의 다 이 조합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

몇 년 지나니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① 느리다 3D 오브젝트를 로딩하려면 메가바이트 단위 데이터를 받아야 한다. 히어로 화면이 뜨기까지 3~5초가 걸리는 사이트가 흔해졌다. 참을성 없는 방문자는 그냥 떠났다.

② 모바일에서 버벅댄다 데스크톱에선 부드럽게 움직이던 애니메이션이 모바일에선 뚝뚝 끊겼다. 전 세계 웹 트래픽의 60%가 모바일인데, 이건 치명적이었다.

③ 검색에 안 걸린다 3D 캔버스 안의 텍스트는 HTML이 아니다. 이미지 위에 박힌 헤드라인도, 스크롤해야 나타나는 설명도, 검색 엔진이 읽지 못한다. “예쁜데 구글에서 검색이 안 되는 사이트”가 쏟아졌다.

④ 시각장애인 접근성이 무너졌다 스크린리더는 정적인 HTML을 읽는다. 움직이는 3D 오브젝트, 스크롤로 트리거되는 요소는 전부 “보이지 않는 콘텐츠”였다. 접근성 소송이 늘었다.

⑤ 무슨 회사인지 모르겠다 이게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다. 사이트는 예술작품처럼 보이는데, “이 회사가 뭘 하는 회사인지”가 10초 안에 안 읽혔다. 전환율(문의·계약·구매)이 떨어졌다.

2023~2024년이 되자 “이 방식은 비용만 비싸고 비즈니스엔 안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진자는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4. 에디토리얼이 돌아온 네 가지 이유

이유 1. 5년짜리 스크롤 애니메이션 피로감

앞서 말한 “신기하다 → 질린다” 사이클이 정확히 작동했다. 2020년에 히어로 3D 오브젝트는 감탄사를 자아냈지만, 2025년엔 “또 이거 돌아가네”가 됐다.

흥미로운 건, 이 피로감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점이다. 매번 새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마다 같은 라이브러리, 같은 패턴을 복붙하는 자신을 발견한 디자이너들이 “이제 그만”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유 2. AI 검색의 등장이 판을 바꿨다

2023년 이후 가장 큰 변화다. 검색 트래픽의 일부가 구글에서 ChatGPT, Perplexity, Claude 같은 AI로 옮겨갔다.

이 변화가 왜 중요한가. AI는 웹페이지를 “그림”이 아니라 “텍스트와 구조”로 읽는다. 구체적으로:

  • H1, H2, H3 태그 — AI는 이 위계를 보고 문서의 논리 구조를 파악한다
  • ,
    태그 — 주제 단위로 끊어서 읽는다
  • 안의 텍스트 — 이것만 인용한다

  • 구조화 데이터 (Schema.org) — 회사·제품·기사의 메타데이터를 명시적으로 읽는다

반대로 AI가 읽지 못하는 것:

  • 3D 캔버스 안의 헤드라인 (JavaScript로 렌더링)
  • 이미지에 박힌 텍스트
  • 스크롤로 트리거되는 애니메이션 안의 내용
  • 복잡한 커스텀 컴포넌트

AI가 회사를 언급하려면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읽을 수 있으려면 HTML의 의미 구조가 살아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2005년의 “시맨틱 웹” 이상론이, 20년 만에 AI 시대의 실용론으로 돌아온 이유다.

이유 3. Core Web Vitals — 느린 사이트는 검색에서 밀린다

2021년부터 구글은 웹페이지의 성능 지표(Core Web Vitals)를 검색 랭킹 팩터에 포함시켰다. 세 가지 지표다.

  • LCP (Largest Contentful Paint) — 가장 큰 콘텐츠가 뜨는 시간. 2.5초 안에 뜨는 게 목표
  • CLS (Cumulative Layout Shift) — 화면이 뜨고 나서 레이아웃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 INP (Interaction to Next Paint) — 사용자가 클릭했을 때 반응하는 속도

3D 애니메이션, 거대한 이미지, 스크롤 연출 — 전부 이 지표를 나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검색 순위가 실제로 떨어졌다.

반대로 정적 에디토리얼 레이아웃은 구조상 가볍고 빠르다. “퍼포먼스 = SEO = 트래픽”이 확실해지자, “느리지만 예쁜 사이트”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유 4. 타이포그래피의 재발견

AI 이미지 생성(Midjourney, DALL-E, Stable Diffusion)이 대중화되자 시각적 요소의 가치가 폭락했다. 그라데이션, 일러스트, Blob, 3D 오브젝트 — 모두 AI가 30초 만에 만든다.

그런데 AI가 아직 못 하는 게 있다.

  • 타이포그래피 감각 — 어떤 글꼴이 어느 맥락에 맞는지
  • 그리드 위계 —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
  • 콘텐츠 편집력 —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디자이너들이 다시 “기본기”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기본기를 살리려면 그리드가 필요하다.

5. Swiss 디자인 — 지금 트렌드의 70년 된 뿌리

여기서 중요한 역사적 맥락 하나. 지금 다시 유행하는 “에디토리얼·그리드” 스타일의 뿌리는 1950년대 스위스다. 구체적으로 세 사람이 이걸 만들었다.

세 거장 — Swiss 디자인의 설계자들

Josef Müller-Brockmann (요제프 뮐러-브로크만, 1914–1996)

스위스 취리히의 그래픽 디자이너. 현대 웹 디자인이 쓰는 “12-컬럼 그리드”의 사실상 발명자다. 1981년에 쓴 책 “Grid Systems in Graphic Design” (그래픽 디자인의 그리드 시스템)이 있는데, 이 책은 지금도 전 세계 디자인 학교의 1학년 필독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55~1965년 사이 제작한 취리히 톤할레 콘서트 포스터 시리즈다. 복잡한 일러스트나 사진 없이, 정사각형·원·직선만 가지고 그리드 위에 배치한 포스터. 6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놀랄 만큼 모던하다. 한 번 검색해보시면 바로 느낌이 올 거다.

그가 남긴 메시지: “디자인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수학적 시스템이다. 같은 원칙으로 만들어진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이 철학이 왜 지금 중요한가. AI가 만드는 디자인이 유행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대에, 70년이 지나도 유효한 원칙을 가진 설계가 역으로 희귀해진 것이다.

Emil Ruder (에밀 루더, 1914–1970)

바젤의 디자인 학교(Schule für Gestaltung Basel) 교장이자 타이포그래퍼. 1967년에 쓴 “Typographie” (타이포그래피)라는 책으로 “타이포그래피는 예술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다”라는 관점을 정립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장식이 아니라 정보 전달이다. 읽기 어려운 타이포그래피는 실패한 타이포그래피다.”

21세기 기준으로 들으면 당연한 말 같지만, 1960년대엔 이게 급진적이었다. 당시 타이포그래피는 “예쁜 글씨체로 멋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Ruder가 그걸 뒤집었다.

그가 남긴 것:

  • Baseline grid (모든 텍스트가 같은 가로 줄에 맞춰지는 시스템)
  • Helvetica를 본문 표준으로 대중화
  • “기능적 타이포그래피” 개념

지금 우리가 Tailwind에서 leading-snug, tracking-tight 같은 걸 조정하는 것 — 전부 Ruder가 60년 전에 정립한 원칙의 연장선이다.

Karl Gerstner (카를 게르스트너, 1930–2017)

앞의 두 사람보다 한 세대 어린 실무자이자 이론가. 1964년에 쓴 “Designing Programmes”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기)가 대표작이다. 제목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 1964년에 디자인을 “프로그래밍”한다고?

맞다.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디자인은 결과물이 아니라 규칙의 집합이다. 규칙을 잘 설계하면 수많은 결과가 자동으로 나온다.”

구체적으로 그는 “모듈 그리드” 개념을 제안했다. 하나의 페이지를 12×8 같은 격자로 미리 나눠두고, 콘텐츠는 그 격자 위에서 2단·3단·4단·6단 등 여러 방식으로 동시에 배치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이게 왜 혁명적인가. 이전까지는 디자이너가 페이지마다 처음부터 레이아웃을 그렸다. Gerstner 이후엔 “12×8 그리드 위에 콘텐츠만 바꿔 끼우면” 페이지가 완성됐다. 디자인 작업이 수십 배 빨라졌다.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디자인 시스템 (Design System)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이다. Apple HIG, Material Design, Tailwind의 설계 철학이 모두 Gerstner 계열이다.

왜 12였나?

뮐러-브로크만이 “12-컬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12는 약수가 많다.

  • 12 ÷ 2 = 6 (두 단 분할)
  • 12 ÷ 3 = 4 (세 단 분할)
  • 12 ÷ 4 = 3 (네 단 분할)
  • 12 ÷ 6 = 2 (여섯 단 분할)

같은 그리드 하나로 2단·3단·4단·6단 레이아웃을 모두 만들 수 있다. 페이지마다 구조를 바꿔도 12-컬럼이라는 공통 뼈대는 유지된다.

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60년 뒤 Bootstrap을 탄생시켰다. Bootstrap의 col-md-4, col-md-6, col-md-8 — 전부 Müller-Brockmann의 12-컬럼 그리드를 웹에 옮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Tailwind의 grid-cols-12, col-span-4로 다시 살아났다.

왜 8이었나?

가로가 12라면, 세로는 왜 8이었을까. 답은 “글자 높이와 맞추기 위해서”다.

본문 텍스트의 한 줄 높이는 보통 24~32픽셀 정도다. 페이지 전체를 이 높이의 배수로 나누면, 텍스트가 자연스럽게 격자에 맞춰 배치된다. 이걸 Baseline grid (기준선 그리드)라고 부른다.

지금 Apple Human Interface Guidelines, Google Material Design, 대부분의 디자인 시스템이 “8px grid system”을 쓴다. 모든 여백·크기·간격을 8의 배수로 통일하는 방식이다. 이것도 에밀 루더와 Swiss 디자인이 정립한 원칙의 직접 후손이다.

6. 70년 된 아이디어가 왜 지금 다시 중요한가

Swiss 디자인의 핵심 철학이 두 가지였다.

  1.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2. “디자인은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

이 철학이 2010~2020년대엔 “너무 엄격하고 재미없다”며 외면받았다. Flash도, Three.js도 “감정적 체험”을 추구하는 쪽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AI 시대에 이 철학이 다시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 AI가 읽을 수 있는 구조 = 시스템화된 콘텐츠
  • 검색 최적화 = 의미가 명확한 마크업
  • 퍼포먼스 = 불필요한 장식 제거
  • 장기 운영 = 예측 가능한 규칙

Swiss 디자인은 본래 인쇄물·포스터·책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철학은 매체를 초월한다. 종이든 웹이든 AI든,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구조”가 필요한 모든 곳에 적용된다.

그래서 70년 된 원칙이, 가장 최신 기술(AI)과 만났을 때 다시 “최적의 정답”이 된 것이다.

지금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이트들

말로만 하면 막연하니까, 구체적으로 “지금 잘나가는 사이트들”을 보자. 이들의 공통점이 곧 현재 트렌드다.

  • Stripe (결제 플랫폼) — 강한 타이포그래피 + 엄격한 12-컬럼 그리드. 3D 거의 없음
  • Linear (프로젝트 관리 도구) — 흑백 톤 + 미니멀 + Swiss 스타일
  • Vercel (웹 호스팅) — 에디토리얼 레이아웃 + 코드 중심
  • Figma (디자인 도구) — 자사 사이트가 깔끔한 블로그 같은 구조
  • Notion (문서 도구) — 흰 배경 + 타이포 중심
  • Perplexity, Anthropic, OpenAI — AI 회사들이 오히려 가장 정적임

10년 전만 해도 “정적인 사이트 = 기술력 없음”으로 해석됐다. 지금은 “정적인 사이트 = 기술력에 자신 있어서 쇼를 안 함”으로 뒤집혔다. 진자가 반대로 완전히 돌아온 것이다.

Awwwards 2026년 수상작을 2021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극명하다. 2021년엔 3D 범벅이었는데, 2026년엔 Swiss 스타일 에디토리얼이 대세다. 같은 심사위원들이, 같은 기준으로 뽑는데 5년 만에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7. 이기는 전략 — 파도가 아니라 기본기에 투자하라

진자 운동을 관찰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매번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지친다. 5년마다 사이트를 전면 리뉴얼해야 하고, 그때마다 새 기술을 배워야 하고, 새로 만든 것이 3년 뒤엔 구식이 된다.

대신 주기와 무관하게 필요한 것에 투자해야 한다. 웹 디자인에서 이런 “불변 스킬”은 정해져 있다.

불변 스킬 5가지

① 타이포그래피 Flash 시대에도, Three.js 시대에도, AI 시대에도 글자는 읽혀야 한다. 글꼴 선택·크기·줄 간격·자간 — 이걸 잘 다루는 감각은 어떤 기술이 와도 가치가 유지된다.

② 그리드 시스템 Swiss 디자인 이후 70년간 유효했고, 앞으로 70년도 유효할 것이다. Bootstrap이든 Tailwind든 Next.js든, 12-컬럼 사고는 공통 언어다.

③ 정보 아키텍처 (IA) “이 회사의 콘텐츠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는 매체·기술과 무관한 질문이다. 종이책이든 웹사이트든 앱이든, 정보의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은 평생 간다.

④ 접근성 (A11y) 법적·윤리적 요구라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법이 강화되는 추세다. 지금 한국도 웹 접근성 의무화 대상 기관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⑤ 퍼포먼스 디바이스·네트워크가 발전해도 “빠른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용자 기대치가 높아져서 “3초 이상 기다리면 이탈”이 상식이 됐다.

우리 이야기 — 9년간 이 다섯 가지에 투자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2017년에 우리가 “콘텐츠 구조·CMS·검색 최적화”에 집중하기로 한 건 당시엔 좀 “지루한 선택”으로 보였다. 주변에선 다들 Three.js·GSAP으로 화려한 쇼케이스 사이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9년이 지나고 보니, 그 선택이 지금 시장에서 가장 희귀한 역량이 됐다.

  • GS칼텍스 미디어허브를 8년째 같은 팀이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을 두세 번 개편했지만, 콘텐츠 구조와 CMS는 그대로다. 그래서 기존 자산이 한 번도 손상되지 않았다
  • 벤틀리 서울 웹사이트를 5년째 같은 팀이 관리하고 있다. 본사 브랜드 가이드가 바뀔 때마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모듈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디에디트·KTX매거진·헤이트래블 — 여러 매거진 매체의 발행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에디터가 바뀌어도 매거진 톤이 유지되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이 모든 게 기본기 투자의 결과다. 화려한 연출 기술은 5년마다 바뀌지만, 콘텐츠 구조·타이포그래피·그리드는 9년 전에 쌓은 게 지금도 그대로 작동한다.

8. 대기업이 지금 스튜디오파티클에 묻는 것

최근 대기업 커뮤니케이션팀이나 매거진 발행 조직에서 문의가 오는 경향이 뚜렷하게 바뀌었다. 10년 전엔 “요즘 트렌드에 맞는 멋진 사이트 만들어주세요”가 흔한 요청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이들이 실제로 묻는 세 가지는 이렇다.

① “우리 콘텐츠가 검색과 AI에서 제대로 발견되나요?” 네이버·구글뿐 아니라 ChatGPT·Perplexity가 우리 기업을 언급할 때 정확하게 인용하는가. 이건 이제 마케팅팀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담당 임원이 직접 챙기는 지표가 됐다.

② “담당자가 바뀌어도 사이트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나요?” 대기업에선 담당자 순환이 2~3년마다 일어난다. 이전 담당자만 알던 CMS·에이전시 계약 구조·비밀번호 — 이런 게 인수인계에서 무너지면 사이트가 죽는다. “사람이 바뀌어도 살아남는 구조”가 핵심 요구다.

③ “5년, 10년 뒤에도 구조가 유지되나요?” 기업 홈페이지나 뉴스룸은 한 번 만들면 보통 5~10년 쓴다. 그 기간 동안 디자인은 개편되어도 콘텐츠는 살아남아야 한다. 2018년에 쓴 보도자료가 2028년에도 검색에 잡히고 AI가 인용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지금 시장에 드물다. 화려한 연출 역량을 가진 빅 에이전시는 많지만, “콘텐츠 구조 설계 + CMS 아키텍처 + 장기 운영 경력”을 한 팀이 모두 가진 곳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2017년부터 이 세 가지에만 집중해왔다. 진자 운동으로 보면, 우리는 지난 9년간 계속 “읽힘의 편”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장이 우리 방향으로 돌아왔다.

9. 다음 진자는 어디로

자연스러운 질문이 있다. “지금 에디토리얼이 다시 유행하면, 또 언젠가는 반대로 튀는 거 아닌가?”

맞다. 그럴 것이다.

향후 3~5년은 현재 방향(에디토리얼, 구조화 데이터, AI-ready 콘텐츠)이 주류다. 하지만 2030년쯤엔 다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유력한 후보는 세 가지다.

① Generative UI (생성형 UI) AI가 사용자마다 다른 페이지를 실시간으로 만들어내는 방식. 같은 회사 사이트를 A가 보는 것과 B가 보는 게 다름. 지금 OpenAI·Anthropic·Google이 연구 중이다.

② Voice·Conversational UI 2017~2019년에 한 번 “챗봇 붐”이 있었지만 기술 한계로 실패했다. 이번엔 LLM 기반으로 훨씬 자연스럽다. 웹사이트가 “대화하는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③ Spatial Web / AR·VR Apple Vision Pro 계열이 성숙하면 3D 공간 속 웹사이트가 나올 수 있다. 지금의 “2D 화면”이 구식으로 보일 시점이 올 것이다.

이 중 하나가 다음 “화려함”의 축이 되면, 지금 우리가 만드는 에디토리얼은 “너무 정적이고 지루해”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면, 누군가 또 “돌고 돌아 구조가 돌아왔다”는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 기업 커뮤니케이션팀·매거진 발행인·에이전시의 디지털 파트너에게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 검색에 잡히는 웹사이트
  • AI가 인용하는 콘텐츠 구조
  • 5년 뒤에도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
  • 담당자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CMS

이것은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정확한 구조로 만들어진다. 70년 전 뮐러-브로크만이, 루더가, 게르스트너가 정립한 원칙들. 그 원칙들이 지금 AI 시대의 가장 실용적인 엔지니어링이 됐다.

마치며 — 한 문장으로

웹 디자인은 “화려함”과 “읽힘” 사이 진자다. 10년 주기로 왕복한다. 이기는 방법은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투자하는 것이다.

Flash가 가고 시맨틱 웹이 왔을 때, Bootstrap이 지고 Three.js가 떴을 때, 매번 바닥에 있던 원칙만 살아남았다. 타이포그래피, 그리드, 정보 아키텍처, 접근성, 퍼포먼스.

우리는 9년간 이 바닥에만 투자해왔다. 그래서 유행이 어디로 튀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 시점, 그 선택이 가장 경쟁력 있는 자산이 됐을 뿐이다.

다음 진자가 어디로 튀어도, 우리는 계속 바닥에 있을 것이다.